b. 1989
이준옥(Lee Junock)은 개인적 기억—특히 아버지의 어선 노동과 그 주변 사물—을 시적이고 시각적인 언어로 다시 들여다보는 회화를 이어오고 있다. 가족사에 뿌리를 두면서도 작업은 이주 여성, 침묵의 저항자, 목소리가 종종 가려지는 이들처럼 사회에서 주변화된 존재들에 대한 더 넓은 사유로 확장된다. 배와 도구, 아이스박스 같은 오브제는 회화 속 반복되는 모티프로 등장하지만 단순한 정물이 아니다. 그것들은 감정과 기억을 담아 나르는 그릇이 된다. 〈Night Walk〉 연작에서 길가의 잡초와 실루엣은 침묵 속 품위를 지키는 이들의 회복력에 대한 은유로 떠오른다. 작가는 주로 캔버스에 유화와 아크릴로 작업하며, 겹겹이 쌓인 붓질과 매트한 표면을 통해 기억이 남기는 잔향과 감정의 공명을 환기한다. 화면 속 형상들은 종종 흐릿해지거나 사그라들며, 무상성과 파편성에 감응한 시각 언어를 제안한다. 최근에는 회화의 물성과 이미지의 구성 구조로 초점을 옮겼다. 서사를 넘어 리듬·형태·표면을 통해 감정을 캔버스의 직조 속에 스며들게 하는 방법을 탐색한다. 이준옥에게 회화는 사라져가는 것을 다시 호출하는 수단이자, 주변화된 삶들을 조용한 연대와 상호 인식의 장으로 이끌어 들이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