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th Korea, b. 1974
윤소연의 회화는 삶의 표면에서 흔히 지나치는 것들—택배 상자, 종이 쇼핑백, 종이비행기—를 다시 바라보게 한다. 그녀의 작업은 일상의 가장 평범한 사물에 감정을 새기고, 그로부터 하나의 공간, 장면, 혹은 우주를 재구성한다. 화면 속에 재현된 공간은 눈앞에 있는 실내이기도 하지만, 때론 하늘과 바다, 숲이 스며드는 자연의 확장된 감각이기도 하다. 윤소연의 세계는 물리적 공간이기보다는 감정의 밀도가 머무는 ‘감각의 방’에 가깝다. 이러한 장면들은 결코 거창하거나 화려하지 않다. 그녀의 미학은 조용하고 단정하다. 그러나 그 안에는 삶의 리듬과 감정의 움직임이 촘촘히 엮여 있다. 화면은 담백하지만 결코 평평하지 않으며, 사물은 정적이지만 그 위로 감정의 여운이 흔들린다. 종이 상자와 쇼핑백은 ‘임시적인 구조물’이지만, 그 안에 담기는 감정과 풍경은 작가의 기억과 감각, 그리고 세계와의 관계를 은유하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그녀의 주된 매체인 유화는 느리게 마르고, 화면 위에 시간이 쌓인다. 그 느림은 작가의 사유 리듬과 닮아 있으며, 작품은 그 과정 자체를 포용한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 동안 떠오르는 생각들은 마치 종이 위에 접힌 비행기처럼 작고 사적인 것이지만, 작가는 그 안에서 더 멀리, 더 자유롭게 나아가고자 한다. 윤소연의 회화에는 내면적 질문이 늘 깃들어 있다. “나는 행복한가? 만족하고 있는가? 언제까지 그릴 수 있을까?” 이 자문들은 어떤 거창한 담론의 출발이 아니라, 인간적인 불안과 바람, 회복과 지속에 대한 반복적인 고백이다. 그리고 그러한 질문들 속에서도 작가는 여전히 ‘일상’을 그린다. 마치 매일 아침 같은 자리에 앉아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듯, 그녀의 작업은 삶의 반복과 변화를 조율하는 하나의 리듬이 된다. 그녀가 표현하고자 하는 세계는 감정을 덜어내는 ‘해소의 공간’이 아니라, 감정을 담고 머물게 하는 ‘포용의 공간’이다. 보기 쉬운 이미지보다 ‘느껴지는 풍경’이 더 중요하며, 그림이 말해주는 이야기보다 그림이 열어주는 여백이 더 크다. 앞으로의 작업에서 윤소연은 ‘정물’을 기반으로 한 작업을 계획하고 있으나, 동시에 작업은 늘 마음의 흐름에 의해 수정되고 재구성된다. 중요한 건 다음에 무엇을 그릴지보다, 여전히 삶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다. 그녀에게 예술은 경력을 위한 여정이 아니라, 살아가기 위한 태도이며 지속적인 호흡이다. 그림은 그녀에게 불안을 잠재우는 약이 아니라, 그것을 조용히 받아들이고 돌보는 방식이다. 그리고 그 장면들을 마주한 누군가가, 아주 조용한 미소를 지을 수 있다면—그림은 그 순간 완성되는 것이다.